ETF의 시대, 복리의 마법이 다시 중요해진 이유

22.6% 폭락의 하루에도 ‘가만히 있으라’고 말한 사람이 있었다면, 당신은 그 말을 믿을 수 있었을까요?
솔직히 말해서, 투자 얘기만 나오면 머리가 아파지는 분들 많죠. 저도 한때는 그랬습니다. 오르내리는 숫자, 쏟아지는 뉴스, 주변의 수익 인증까지… 정신이 없었거든요. 그러다 문득 ‘도대체 누가 끝까지 웃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답을 찾다 보면 항상 같은 이름이 등장합니다. 존 보글, 그리고 뱅가드. 시장이 무너지는 날에도 스위스 국기를 걸고 “Stay the course”를 외쳤던 사람. 오늘은 그가 남긴 메시지와 함께, 왜 지금이야말로 ETF와 복리를 다시 생각해봐야 하는 시점인지 차분히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단기 수익보다 긴 시간의 힘을 믿는 투자에 대해 말이죠.
목차
블랙먼데이와 존 보글의 선택

1987년 10월 19일, 미국 증시는 하루 만에 22.6% 폭락했습니다. 지금 기준으로 봐도 상상하기 힘든 숫자죠. TV를 켜면 공포 뉴스가 쏟아지고, 전화기에는 환매 요청이 빗발치던 날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자산운용사들이 전화를 받는 것조차 포기했을 때, 뱅가드는 정반대의 선택을 했습니다.
존 보글은 스위스 국기를 사옥에 걸고 직원들에게 말했습니다. 시장의 광기에 휩쓸리지 말자고요. 그리고 임원부터 신입 직원까지 모두 전화기를 들게 했습니다. 본인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Stay the course.” 그가 평생 강조했던 이 문장은, 위기 속에서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행동으로 증명됐습니다. 이 하루가 뱅가드에 대한 신뢰를 만들었고, 그 신뢰가 오늘날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중 하나로 성장하는 기반이 됐습니다.
인덱스 투자 철학, 건초더미를 사라

보글의 투자 철학은 단순했습니다. “건초더미에서 바늘을 찾지 말고, 건초더미를 통째로 사라.” 수많은 종목 중 몇 개를 골라 시장을 이기려 애쓰기보다는, 아예 시장 전체를 사는 편이 훨씬 합리적이라는 생각이었죠. 이 철학이 바로 인덱스펀드의 출발점이었습니다.
1976년, 뱅가드는 일반 투자자를 위한 최초의 인덱스펀드를 출시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시장 평균 수익률에 만족하겠다”는 발상은 조롱의 대상이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오히려 이 단순한 전략이 대부분의 액티브 펀드를 이긴다는 사실이 데이터로 증명됐습니다.
수수료가 복리를 갉아먹는 방식

보글이 특히 분노했던 건 수수료였습니다. 투자자는 위험의 100%를 감수하는데, 수익의 상당 부분을 금융회사가 가져간다는 구조였죠. 그는 이를 숫자로 설명했습니다. 이 대목에서 많은 투자자들이 처음으로 ‘복리의 적’이 무엇인지 깨닫게 됩니다.
| 조건 | 연 7% 수익 | 연 4.5% 수익 |
|---|---|---|
| 초기 투자금 | 1,000만원 | 1,000만원 |
| 50년 후 자산 | 약 2억 9,457만원 | 약 9,000만원 |
연 2.5%의 차이가 50년 뒤에는 인생을 바꿀 만큼의 격차를 만듭니다. 이게 바로 복리의 무서움이자, 수수료의 잔인함입니다.
ETF가 투자시장의 중심이 된 이유

인덱스펀드를 상장해 주식처럼 사고팔 수 있게 만든 것이 바로 ETF입니다. 이 단순한 구조 변화 하나가 투자 시장의 풍경을 완전히 바꿔놓았습니다. 이제 투자자는 증권 계좌 하나로 시장 전체에 투자할 수 있고, 매수·매도도 실시간으로 가능합니다. 편리함이라는 측면에서는 거의 완성형 상품에 가깝죠.
미국에서는 ETF 종목 수가 상장 주식 수를 넘어섰고, 국내 ETF 시장 규모도 300조원을 돌파했습니다. 특히 퇴직연금 계좌에서도 ETF 투자가 가능해지면서, 장기 자금이 자연스럽게 ETF로 흘러들어오고 있습니다. 낮은 비용, 높은 분산 효과, 투명한 구조. ETF가 대세가 된 이유는 명확합니다.
ETF의 편리함이 만드는 새로운 함정

아이러니하게도, ETF의 최대 장점인 ‘편리함’이 단점이 되기도 합니다. 언제든 사고팔 수 있다는 점은 투자자를 장기 보유가 아닌 단기 매매로 유혹합니다. 뉴스 하나, 지수 변동 하나에 ETF를 사고파는 순간, 인덱스 투자는 주식 매매와 다를 바 없어집니다.
| 구분 | 장기 투자 | 잦은 매매 |
|---|---|---|
| 거래 비용 | 최소화 | 누적 증가 |
| 복리 효과 | 극대화 | 훼손 |
| 투자 심리 | 안정적 | 변동성 확대 |
존 보글이 생전에 ETF에 대해 우려했던 이유도 바로 이것입니다. 인덱스 투자는 ‘거래’가 아니라 ‘보유’인데, ETF는 그 철학을 흔들 수 있다고 봤던 거죠.
보유의 힘, 복리의 마법을 누리는 법

결국 ETF 투자의 핵심은 상품이 아니라 태도입니다. 어떤 ETF를 샀느냐보다, 얼마나 오래 들고 있었느냐가 결과를 좌우합니다. 복리는 시간을 먹고 자라는 생물과도 같습니다. 중간에 건드릴수록 힘을 잃습니다.
- 매수 시점보다 보유 기간에 집중하기
- 시장 변동성은 ‘소음’으로 인식하기
- 자동 투자와 정기 적립 활용하기
ETF의 시대일수록, 존 보글의 이 한마디가 더 중요해집니다. “인덱스 투자는 매매가 아니라 보유다.”
주식이 개별 기업에 투자하는 상품이라면, ETF는 여러 종목을 한 번에 담은 포트폴리오입니다. 한 종목의 리스크에 노출되기보다 시장 전체 흐름을 추종한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입니다.
장기 투자 관점에서는 충분한 경우가 많습니다. 실제로 장기간 시장 평균을 이기는 액티브 펀드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며, 인덱스 ETF는 비용과 분산 측면에서 매우 효율적입니다.
잦은 매매는 수수료와 세금을 발생시켜 복리 효과를 약화시킵니다. 인덱스 투자의 핵심은 ‘보유 기간’이지 ‘매매 타이밍’이 아닙니다.
네, 시장이 하락하면 ETF 역시 손실을 볼 수 있습니다. 다만 개별 종목보다 변동성이 완화되고, 장기적으로는 회복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 차이입니다.
장기 자금인 퇴직연금과 ETF는 궁합이 좋은 편입니다. 특히 저비용 인덱스 ETF는 복리 효과를 극대화하는 데 유리합니다.
종목 선택 부담이 적고, 구조가 단순하며, 장기 투자 원칙을 지키기 쉬운 상품이기 때문입니다. 시장을 이기려 하기보다 시장과 함께 가려는 투자자에게 적합합니다.

ETF 이야기를 여기까지 읽었다면, 아마 투자에 대한 시선이 조금은 달라졌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더 빨리 사고파는 법이 아니라, 더 오래 버티는 법 말이죠. 존 보글이 평생 강조했던 메시지는 단순하지만 쉽지 않습니다. 시장이 요동칠수록 아무것도 하지 않는 용기, 뉴스와 숫자의 소음을 견디는 인내, 그리고 시간을 내 편으로 만드는 태도. ETF는 그 자체로 마법의 상품이 아닙니다. 하지만 낮은 비용과 넓은 분산이라는 조건 위에 ‘보유’라는 원칙이 더해질 때, 복리는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작동합니다. 코스피 5000을 이야기하는 지금 같은 시기일수록, 더 많은 수익보다 더 긴 시간을 먼저 떠올려야 하지 않을까요. 결국 투자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는 정보도, 타이밍도 아닌 ‘끝까지 가는 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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